유일한 '적정가격'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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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비교대상에서 적정주가를 예측할 수 있는가? 혹은 적정주가를 예측할 수 있는 비교대상은 있는가?
오래전에 필자의 지인이 유명 디자이너의 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다. 옷 가격을 정할 때 옷을 걸어 놓은 뒤 최종적으로 최고 디자이너가 한참 바라보다가 얼마라고 얘기하면 그것이 부띠끄에 내놓을 때의 가격이 된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똑같은 옷이 몇벌 되지 않는 디자이너 브랜드의 고급스러운 옷값이 특정인의 생각에 따라 정해지듯이 특정종목의 주식을 매집한 세력이 있다면 그 세력의 마음대로 주가가 정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특정 다수의 많은 투자자들이 거래하는 주식은 일반적으로 매수자와 매도자들의 경쟁에 의해 가격이 정해진다. 이때 투자자들은 얼마를 그 주식의 적정가로 생각하고 거래할까. 적정가가 존재한다면 주가가 적정가보다 높은 가격에 있는 고평가 상태에서는 파는 게 맞고, 주가가 적정가보다 낮은 가격에 있는 저평가 상태에서는 사는 게 맞다고 누구나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서 근본적인 문제는 유일한 적정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적정가를 구하기 위해 주식시장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가치평가의 척도 중 하나는 주가를 기업의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값인 PER(주가수익비율)이다.
◆적정 PER 따라 고·저평가 여부 결정
현재 주가에서 PER이 낮을수록 저평가 됐다고 말하고, PER이 높을수록 고평가됐다고 말한다. 적정 PER에 현재 주당순이익을 곱하면 적정가가 되므로 적정 PER이 얼마인가에 따라서 현재 가격이 저평가인지, 고평가인지가 결정된다. 적정 PER을 결정하는 데는 시중금리, 해당기업의 이익성장률, 과거 몇년 간의 평균 PER, 같은 업종내 다른 기업의 PER 등 여러 지표들이 사용된다.
옷도 어떤 계층을 대상으로 하고 어떤 목적으로 입는 옷이냐에 따라 적정한 가격이 크게 달라진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가, 20~30대 사무직 여성을 위한 정장인가, 캐주얼 의상인가, 파티복인가 등에 따라서 재료비 대비 판매가격이 달라지는 것이다. 주식의 적정가도 어떤 업종에 속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투자의 기본이다.
최근 기업공개(IPO)를 앞둔 천호식품의 경우 투자은행(IB)업계에서는 적정 PER을 11~14 수준으로 제시했는데, 이에 대한 근거로는 비슷한 사업을 하는 기업들의 PER이다. 이러한 기업들의 작년 말 기준 PER은 ▲동우 8 ▲동서 9 ▲엠에스씨 8 ▲하림 13 ▲이지바이오 14 ▲한일사료 15 ▲푸드웰 16 ▲진바이오텍 29 ▲케이씨피드 30 등으로 평균이 15.7이다. 여기에 할인율을 약 20% 적용했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동종업계 기업들의 PER을 기준으로 할 때는 유사기업 사이의 상대적인 저평가와 고평가만 판단할 수 있으며 그외 요소들의 영향은 고려되지 않는다. 이런 판단 방법은 같은 업종 내에서 주식을 사거나 팔 때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것을 사고 상대적으로 고평가된 것을 파는 방식의 전략을 취할 때 도움이 된다.
공모가 산정에서 적정주가에 할인율 20%를 적용한 것이 불변의 진리라면 상장 후에는 공모가격보다 20% 정도 주가가 오르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이 오르거나 오히려 공모가 이하로 내려가는 경우들이 흔하다.
합리적인 전략인 저평가 매수 및 고평가 매도 전략을 모든 투자자들이 취한다면 업종 내 기업들의 주가는 업종 평균 PER을 중심으로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변해야 한다. 하지만 업종 평균 PER보다 높은 종목의 주가가 내리기는커녕 계속 더 올라가고, 업종 평균 PER보다 낮은 종목의 주가가 오르기는커녕 계속 내려가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주가가 많이 올라 PER이 높아져서 고평가 됐으니 팔아야겠다는 생각으로 팔고 난 뒤 훨씬 더 많이 오르는 모습을 보면 수익을 내고도 기분이 상한다. 반대로 실적이 좋아져서 PER이 매우 낮은 만큼 주가가 오를 것으로 보고 계속 보유했는데 주가가 하락하는 경우도 나타난다. 이럴 때 그 종목을 사거나 파는 주체를 보면 PER을 기준으로 적정가를 판단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포함돼 있는 개인투자자가 아니라 전문투자집단인 국내기관, 외국기관, 연기금 등인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국내기업과 해외기업 비교하기도
적정 PER과는 무관하게 주식을 매매하는 데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다. 우선 비교대상의 기업들을 선정하는데 일률적인 기준이 없다. 완벽히 똑같은 제품만을 취급하는 기업들을 비교 기업으로 선정하려 해도 기업이 몇개 되지 않아 통계적으로 의미가 없다. 결국 임의로 기준을 설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똑같은 제품을 취급하더라도 그외 제품은 서로 다른 경우들도 많다. 식품회사지만 사료도 만들고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하는 회사도 있다. 천호식품과 비교대상 기업 중 이지바이오도 그런 경우다.
건설회사에서 건설업체 전부를 대상으로 할 것이냐, 해외건설업체를 대상으로 할 것이냐 식의 문제도 있다. 내수 부동산시장이 침체돼 건설회사들이 어려울 때 해외건설 수주를 많이 따면서 호황을 누리는 회사도 있다.
국내기업이 아니라 해외기업을 비교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한국의 반도체기업과 미국 또는 대만의 반도체기업을 비교하거나, 한국의 자동차회사와 일본의 자동차회사를 비교할 수도 있다.
은행주는 제조업과는 다른 특성상 주당순자산이 기준인 PBR(주당순자산비율)이 PER보다 더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인도와 태국의 주요은행들의 PBR은 2배와 1.5배, 싱가포르의 DBS는 1.2배 수준인 반면 KB금융과 하나금융은 0.5~0.7배에 불과하다.
이렇게 한국 은행들의 주가가 저평가 됐다는 이유로 은행주 추천이 나오기도 한다. 다만 한국과 외국의 내부적인 상황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자산가치 평가로만 외국기업과 국내기업을 비교할 수 있을지는 잘 생각해야 한다.
최근 현대증권이 마카오의 카지노업체 주가가 반등하고 있다면서 한국 비교대상 기업인 외국인 상대 카지노업체 파라다이스의 목표가를 1만6500원에서 2만1000원으로 상향조정한 바 있다.
마카오의 대표 카지노인 샌즈 차이나(Sands China)의 2012~13년 예상 PER 평균이 15배에서 19배로 높아졌다는 점을 참고해 파라다이스 적정 PER을 기존의 15배에서 19배로 높인 것이다. 마카오에 가는 카지노 고객의 일부가 한국 카지노에도 온다면 논리적으로 맞는 해석이다. 파라다이스의 3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7% 증가한 1104억원, 영업이익은 949% 늘어난 243억원으로 예상된다.
◆테마주로 묶일 경우 반대 양상 보이기도
근래에는 테마주라는 이름하에 시장의 인기도에 따라서 비교집단의 특성을 규정짓기도 한다. 과거에는 서로 다른 업종에 속하던 기업들이 새로운 정의에 의한 테마에 따를 경우 같은 집단에 속할 수도 있다.
증권시장의 기존 분류에 의하면 평균 PER이 낮은 업종에 속해 주식시장 전체 대비 저평가 종목이 어떤 계기로 특정 테마에 속하게 되면 그 테마 기업들의 평균 PER은 높아 주가도 갑자기 크게 오르는 현상이 나타난다.
예컨대 투자자들의 관심도가 낮은 건설회사로서 건설업종의 전반적인 PER에 비해 PER이 낮았던 기업이, 정부의 특정 개발사업에 연루되는 기업 리스트에 올라 PER이 매우 높아지는 수준까지 주가가 상승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대선에서는 특수건설, 이화공영처럼 PER이 낮았던 종목이 새 정부의 대운하사업 관련 테마주에 들어가서 천정부지로 주가가 올랐었다. 주식시장 전체 기업을 대상으로 본다면 지표상 매우 저평가됐던 기업이 특정테마에 들어가면서 대단한 고평가로 변한 것이다.
전통 제조업을 하던 기업이 새로운 IT 사업에 진출하면서 신규사업부 매출이 기업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낮더라도 IT 업종 PER 수준으로 주가가 올라가기도 한다. 최근 박근혜·안철수·문재인 관련주 같은 테마주의 주가가 크게 움직인 것은 더더욱 비합리적이다. 기업 CEO가 대선주자와 인간적인 관계나 기타 관계가 있다는 이유로 기업 경영에 수혜를 받지는 않으며 대통령이 된 후 특정기업에 수혜를 준다면 비리이기 때문이다.
업종이나 테마 전체의 평균 PER을 기준으로 그 업종에 속하는 종목의 적정주가를 산출하는 것의 근본적인 문제는 업종 전체가 고평가인지 저평가인지는 고려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업종 평균 PER이 지나치게 고평가일 때 그 업종에 속하는 기업들 대부분의 주가가 내려간다면 업종 내에서 상대적 저평가이던 기업의 주가도 내려갈 수 있다.
이럴 때에는 업종 내 특정종목의 PER이 상대적으로 낮은지 높은지는 투자에 별 참고사항이 되지 못한다.
예컨대 90년대 말 인터넷기업들의 주가가 천정부지로 올라서 PER이 100이 넘는 종목들도 나타나고 업종 평균 PER이 수십배에 달하던 시기가 그랬으며, 미국에서 나스닥시장도 그랬다. 그 뒤 2000년대 들어 추풍낙엽처럼 이들 종목의 주가가 동반 추락했던 것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요즘도 자동차주로서 현대차를 살지 기아차를 살 지처럼 개별종목을 선택하는 것보다는 자동차주, 정유주, 조선주 등 업종의 선택이 수익률에 더 큰 영향을 주기도 한다. 업황에 비해 그 업종이 전체적으로 저평가된 상태인지 고평가까지 주가가 올라가 있는지를 봐야할 것이다.
비교대상 집단의 가장 큰 규모는 국가라고 할 수 있다.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기준으로 한국증시의 12개월 선행 PER(12MF PER)은 선진국과 신흥국을 통틀어 비교대상 23개국 중 러시아의 5.1배를 제외하면 가장 낮은 8.8배다.
무디스 기준의 Aa 등급에 들어가는 국가들을 비교 대상으로 한다면 IBES가 분석한바 12MF PER이 칠레 15.3배, 대만 14.9배, 홍콩 14.5배, 벨기에 13.7배, 일본 11.5배, 남아공 11.5배, 중국 8.9배인 반면 한국은 8.7배로 가장 낮았다. PER 측면에서 한국 주식시장을 다른 국가들과 비교할 때 매력적이라는 점을 투자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