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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는 터치스크린 현실로···'그래핀' 시대 눈앞

닥터 후 2012. 3. 29. 10:56

 


#출근길 지하철 안, 주머니에서 둘둘 말려 있던 터치스크린을 꺼내 펼쳐 들고 전자신문을 읽기 시작한다. 전화가 오자 팔목에 차고 있던 휴대전화를 풀어 통화를 한다. 실수로 바닥에 떨어뜨려도 종이처럼 얇은 디스플레이에는 흠집 하나 나지 않는다.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광경이지만 가까운 미래에 우리의 일상이 될 모습들이다. '꿈의 나노물질'이라 불리는 그래핀(Graphene)이 세상을 또 한 번 획기적으로 바꿀 전망이다. 그래핀의 상용화에 청신호를 보내는 성과들이 국내에서 속속들이 나오고 있다.

울산과학기술대학(UNIST)의 백종범 교수 연구팀은 지난 26일 드라이아이스와 흑연을 고속으로 분쇄해 그래핀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친환경 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생산비도 저렴해 그래핀 상용화를 앞당겼다는 평가다. 현재 그래핀 생산에는 강산과 산화제 등이 사용돼 유독물질이 발생하고 성능도 떨어진다.

그래핀은 흑연의 표면층을 한 겹만 떼어낸 탄소나노물질이다. 탄소 원자가 육각형 형태로 서로 연결돼 벌집 모양을 이루는 2차원 평면 구조를 갖고 있다. 원자 한 층 두께이기 때문에 눈으로 볼 수 없을 만큼 얇고 투명하다. 구리보다 100배 이상 전기가 잘 통하고 반도체보다 100배 이상 전자를 빠르게 이동시킬 수 있다.

강도는 강철의 200배 이상이고 열전도성은 다이아몬드의 2배이며 신축성이 좋아 늘리거나 구부려도 전기적 성질을 잃지 않는다. 지금까지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데 쓰이는 실리콘 등이 늘리거나 구부릴 때 전기전도성을 잃고 파손되는 것과 달리 변형에 잘 견디고 전기적 성질을 잃지 않는다.







이처럼 그래핀의 무한한 가능성을 현실화시켜 선점하기 위해 세계 각국은 이미 '그래핀 전쟁'에 뛰어든 상태다. 유럽연합(EU) 17개국은 내년부터 10년간 그래핀 상용화에 10억유로(1조5122억원)를 투입한다. 영국도 지난해 10월 900억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은 국가과학재단(NSF)과 매사추세츠공대(MIT) 등 여러 기관이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지난달 7일 사업비 2100억원 규모의 '그래핀 소재·부품 상용화 기술개발사업'의 기술성 평가를 통과시켰다. 내년부터 6년간 최대 2100억원이 투입되는 이번 프로젝트는 단일 소재 분야로는 역대 최대 규모의 연구·개발(R&D) 지원사업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그래핀 연구·개발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30인치 대면적 그래핀 필름 생산 성공이나 그래핀을 적용한 전자재료 제품 상용화 등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으로 그래핀 관련 세계 특허 1161건 가운데 한국(354건)이 미국(554건)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그래핀 연구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삼성이나 포스코·한화 등 미래 먹거리에 목말라 있는 대기업들도 그래핀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삼성테크윈은 이미 실제 그래핀 양산에 필요한 파일럿 생산라인을 갖췄고 공정기술과 장비제작에 필요한 특허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그래핀은 반도체 시장의 90%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실리콘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원가 혁신을 가져올 수 있어 삼성에서는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해 미국의 그래핀 생산업체인 XG사이언스의 지분 20%를 인수해 최대주주에 올랐다. XG사이언스와 그래핀 생산기술 이전 및 공동 R&D 등에도 합의해 향후 그래핀 관련 사업에 본격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한화케미칼도 XG사이언스의 지분 19%를 보유하고 있다. 탄소나노튜브(CNT)와 함께 그래핀 응용소재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그래핀을 연구 중인 이효영 성균관대학교 화학과 교수는 "단시일 내에는 어렵겠지만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디스플레이 같은 경우 비교적 단순하기 때문에 적용되는 제품에 따라 3~4년 내에도 상용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그래핀의 원료인 흑연은 국내에 풍부하게 매장돼 있어 상용화에 따른 효과를 더욱 기대해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